성경/묵상

July 18, 2021 말씀 스케치

John Han 2021. 7. 16. 11:22

예수님이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시다

 

'새로운 공동체는 예수님의 작품이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 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작품이다

 

'열둘을 세우시다'는 것은 '열두 제자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라는 공동체를 창조 하셨다 이처럼 '교회' 탄생은 예수님의 창조 작품이다 

 

이 개념을 적용하면 '제자도'라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로 무엇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자세한 묵상은 목요일에 업로드한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도제의 마지막은 마스터리의 손길이다'를 참고해 주세요)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음 받았다는 것은  창세기를 비춰 생각해 보았을 때 '지음 받은 속성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목적'은 '그분을 따르도록(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제자훈련의 참 모델이다 예수님 때문에 모인 공동체는 동시에 예수님 땜누에 흩어지는 방향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는 공동체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동체가 모여서 하길 원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지켜보고 배우길' 바라신다 예수님의 모습은 늘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전도'란 무엇인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무엇인지 앞서 1, 2장을 통해 자세히 나누었다. 한 번으로 충분할 수 없으니 앞으로 모일 때마다 이것을 더 나누면 된다. 

 

로버트 콜먼, '주님의 전도 계획'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훈련 방법을 설명한다

 

"예수님에게는 공식적 학교도, 세미나도, 정리된 강좌도, 추종자들을 등록시킨 정기적 회원 강의도 없었다. 놀랍게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가르치기 위해 하신 일이라고는 그들로 예수님 자신과 가까이 있도록 하신 것이 전부였다. 예수님이 그분 자신의 학교였으며 커리큘럼이었다"

 

한편으로 예수님의 보내심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그분은 자신이 불러모은 '제자'들을 그냥 보내시지 않으신다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허락 하신다. 우리는 누군가의 권위로 인해 소모 되고 소진 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오히려 채움을 베풀어 주신다. 창조와 모조의 차이는 여기서 온다

 

책임은 창조주가 친히 지고 계시기에 우리는 담대히 '보냄'을 받을 수 있다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기만 할 뿐 모든 결과와 책임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감당하신다 하셨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지어져 간다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Ten Lessons)'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민주주의란 한 번 얻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는 투쟁에 의해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 말한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정부의 권력이 막강해지고 있지만 이후에도 공권력이 남용 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며 언급했다

 

분명 예수님은 '공동체'를 창조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열두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의 편, 쉽게 말하면 예수님 팀에 소속되었지만 마가복음 전체를 살펴보면 정작 예수님의 메시지와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착각한다 모이기만 하면 완벽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만들어 가신다 완성품이 아니라 어쩌면 조립 되지 못한 부품들이다. 혹은 성장해야 하는 신생아와 같다. 

 

'바위' '돌'을 의미하는 '베드로'라는 별명을 지어 주시고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다. 각 이름들을 왜 지어주셨을까? 어떤 의미일까? 창조주는 '있는 그대로'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 각자의 '영성의 색깔' '인격의 색깔'을 쓰신다 물론 다음어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래야 하지만, 최대한 하나님께서는 그 개성을 쓰신다 이것이 핵심이다 내가 먼저 남과 비교하여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멋지게 깎고 다듬으시는 손길을 기대하라  그리고 나 뿐 아니라 타인도 그러한 손길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품고 기도하라 

 

마지막 명단에 예수님을 배반한 자 '가룟 유다'가 등장한다 본격적인 예수님의 행보를 기록할 때 마가는 과연 이 자를 언급하고 싶었을까? 몇 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분명 빼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름을 기록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이고 훈련 받은 공동체라 할지라도 죄성이 아예 없는 유토피아적인 집단이 아니란 것이다. 제자들은 완전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 듯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사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제자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은 막힘이 없다. 모두가 떠나고 심지어 배반당하는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목적에 따라 십자가의 길로 나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공동체라 할지라도 완벽하지 못하다. 그것이 핑계가 되어 죄가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 하신다. 자신이 창조한 공동체를 통해 일 하신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의지하며 한 걸음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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