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묵상

July 25, 2021 말씀 스케치

John Han 2021. 7. 23. 10:45

권리를 주장하는 자, 권리를 받아들인 자

 

본문의 배경

 

성경을 읽을 때 인물, 배경, 장소, 지명만 잘 살펴봐도 생각거리가 풍성해 집니다. 본문은 다시 '집'에 모였다 말합니다. 여기서 집은 가버나움에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베드로의 장모도 치유했고, 중풍병자도 치유 했습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집 안에 함께한 자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항상 집 안과 집 밖의 무리로 나뉘어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마가가 글을 쓰며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집 안과 집 밖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집'이라는 장소가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외인들과 구별하여 가르치신 곳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막 9:28, 33; 10:10). 

 

외인들의 등장

 

그리고 외인들이 등장합니다. '예수의 친족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자들은 이해가 되는데,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반대한다? 뭔가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의 친족'으로 번역된 헬라어를 보면 '예수 주변의 사람들'이라는 어중간한 표현을 씁니다. 

 

외인(1) 가족

 

사실 이것은 마가가 계산하여 쓴 모호한 표현입니다. 물론 가족들이 맞지만 예수님의 가까운 주변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집'이란 의미와 관련하여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에 대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예수 주변의 사람들'과 예수가 자기들에 대한 권리를 가지시는 것을 받아들인 집 안의 사람들을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한층 더 강화된 표현으로 35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어머니, 형제들을 깎아 내리기 위한 표현이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하여 '새로운 영적 가족'이 탄생 됨을 '집'이라는 장소적 구조에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을 받아서 읽는 로마 시대 때 구독자 뿐 아니라 시대를 막론하고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당시엔 특히나 더 가족중심의 구조였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국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을이 모시는 우상과 다른 '그리스도교'란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진 고난을 감내해야 했음을 역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으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고 더 확장하여 사회 구조 안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믿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주는 기쁨의 소유를 맛보았기 때문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아갔을까요? 

 

무엇이 예수를 따르는 것인가? 군중(무리)는 예수님의 청중일까? 예수님의 부름으로 선별된 '열둘'의 자격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 분명 누가 '제자인가'를 확정하십니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기도하며 삶이라는 테투리 안에서 살아내는 자들입니다. 

 

외인 (2) 서기관

 

다음으로 또 다른 외인들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뛰어난 성경 지식을 가진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음모를 꾸미는 대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를 향해 '사탄의 행위'라 단정지었습니다.

 

이들의 죄가 '영원한 죄'인 이유는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여 받은 권위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영이 들려서 능력을 행하는 것이라 비난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보고 '귀신 들린 사람'이라 말했던 것이죠. 

 

누구보다 '권리'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해야 했던 서기관, 바리새인, 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사망의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성령 모독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죄인, 세리들은 지식있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보다 더 쉽게 진실되게 예수님의 권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주장하도록 내어놓았습니다. 

 

마가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특히 앞에서 가르치는 선생(신학자, 목사, 리더)은 더욱 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오래된 '교인'도 위험에 노출된 자입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오랫동안 연구했던 종교 지도자들도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심지어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았든, 믿는 집안이든, 신앙 고백을 했든, 교회에 꾸준히 나가든, 선행을 많이 베풀든 상관없이 현재 '예수님과 나'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은 중요해 보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안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도 그렇지 않는다면 '밖에 있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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