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커피 인문학 - 1장

John Han 2022. 3. 22. 10:39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의 교역량은 구리, 알루미늄, 밀, 설탕, 면 등보다 적다. 미국의 작가 마크 펜더그라스트가 1999년 펴낸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에서 "커피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원자재로서는 지구에서 오일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가치가 있다"라고 한 것이 와전된 듯하다. 

 

그렇지만 한국인에게 커피는 물처럼 많이 마시는 음료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집계를 보면, 성인 1인당 1년에 마시는 커피의 양이 아메리카노 1잔(10그램)을 기준으로 2012년 288잔에서 매년 평균 7퍼센트씩 증가해 2016년에는 377잔에 달했다.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여러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커피의 유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과 같다. 

 

어쨌든 에티오피아 기원설이 파급력이 떨어진 이유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퍼트리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다. 4대 커피 기원설 중 칼디, 셰이크 오마르, 마호메트의 전설은 '커피의 각성 효과'를 토대로 이슬람에서 만든 이야기라고 본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뿌리가 더 깊고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오로모족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35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최다 민족이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랜 세월을 걸쳐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섞어 볶아 당구공 또는 골프공만 하게 뭉쳐 갖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당시에 부족 간 마찰이 일었고 킄고 작은 전투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 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 효과를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찾았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유래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지만,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이슬람 문화권의 메카를 방문하는 '하지'라는 풍습에 꺾이고 만다. 당시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커피는 순식간에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퍼졌고 결국 커피는 이슬람의 문화가 되었다. 

 

커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예만은 아예 커피를 직접 재배하기에 이른다. 이와 관련하여 2가지 이론이 전해진다. 6세기 고대 에티오피아는 국력이 강해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있는 시바 왕국(현재 예멘)을 식민 통치했는데, 그때 자국의 야생 커피나무를 예멘 지역에 옮겨 심었다는 고대 에티오피아 식민지설, 1454년쯤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셰이크 게말레딘에 의해 커피 관목의 경작법과 음용법이 예멘에 전해졌다는 커피 경작법 유래설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에덴동산에는 4개의 강이 흘렀는데 기혼, 비혼, 힛데겔, 유브라데다. 유브라데강은 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혼강은 구스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은 아프리카 남부인 에티오피아 지역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커피의 시원지는 어디일까?

 

예멘은 아시아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나라다.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있고, 홍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마주 보고 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커피나무가 전해졌다는 사실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긴 세월 동안 커피의 시원지는 예멘으로 알려졌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에 관한 구전이 있을 뿐이지만,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란 등 이슬람 권역에서는 커피에 대한 기록들으 남겼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슬람의 음료인 것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

 

예멘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아랍의 시작을 만난다. 고대 페르시아어의 '아라비아'는 메소포타미아의 서쪽과 남쪽 땅을 가리키는 지명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0년쯤부터 아라비아반도의 남부에 거대한 무리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들은 셈족 언어를 구사했다. 이들은 부유함을 자랑하며 번영하던 시바 왕국이다. 

 

시바의 여왕이 등장하는 시점은 기원전 1000년쯤인데, 구약성서와 코란에 행적이 적혀 있다. 구약성서의 '열왕기상'에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의 명성을 듣고 예루살렘을 찾아간 대목이 나온다. 이를 둘러싸고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다수 전해진다.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에피오피아와 예멘 사이의 '커피' 이동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다양하게 추측한다. 결론적으로 커피를 처음 발견한 칼디의 고향이 예멘이냐 에티오피아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커피, 카페를 창조하다

 

미국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는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매장 수가 2만 3,187개로 늘었다. 한국은 현재 카페가 포화 상태이지만, 지속적으로 매장 수는 늘어나고 있다.

 

커피와 카페의 어원은 같다. 에티오피아의 지명인 카파에서 따왔다는 설,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아랍어로 힘을 뜻하는 카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커피가 그것을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는 용어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에티오피아에서 부족 간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의 힘과 정신을 복돋우려고 치러진 '커피 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다. 

 

커피 역사에서 14-15세기의 주인공은 예멘이다. 커피가 수피들을 통해 이슬람 권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예멘은 직접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바그다드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1500년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커피 생두 로스팅용 철제 국자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커피를 전문적으로 볶아내는 커피하우스가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는 물증이다.

 

커피 역사에서 16세기 오스만제국이 등장하고 17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통해 커피가 유럽에 상륙한 이후의 사연은 많은 기록물 덕분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된다. 

 

그중 하나로 당시 로마 사제들이 교황에게 진정을 넣어 기독교인들이 사탄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해달라고 간청 했는데, 교황은 커피를 맛보고는 '이렇게 좋은 음료를 이슬람교도만 먹게 할 수 없다'며 커피에 세례를 주어 기독교인의 음료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윌리엄 우커스는 '올 어바웃 커피'에 1530년 커피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기록했다. 1554년 이스탄불에 처음 개점한 커피하우스는 시리아인 2명이 만든 것이다. 전일본커피상공조합연합회는 이를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커피하우스'라고 평가한다. 

 

커피가 이슬람권에서 유럽 기독교권으로 전파된 경로를 추정할 때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오스만제국의 베오그라드 점령'이다. 셀림 1세가 1520년에 죽자 그의 아들 술레이만 1세가 제10대 술탄이 되고, 오스만제국은 최고 전성기를 이룩했다. 이 시기에 커피가 유럽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4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65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야곱 이라는 유대인이 커피하우스를 열었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급한 사람은 바리스타에게 급전을 치르고 커피를 받아갔다. 바리스타도 너무 바쁜 나머지 돈을 손으로 받을 여유가 없어 상자를 놔두고 넣게 했는데, 이것이 팁의 유래다. 

 

커피의 향미에 빠지다

 

커피 달이기의 한계를 벗어나 우려내기에 눈을 뜨면서 커피의 향미에 몰입하게 되었고 다양한 추출법이 등장했다. 커피를 처음 먹은 것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 원주민들은 커피 열매를 음료가 아니라 음식으로 대했다. 이슬람권 국가에서 전해지는 유래설에도 커피는 열매를 그냥 먹거나 끓여 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커피는 예멘을 통해 이슬람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급속히 확산된다. 얼마나 커피를 마셨던지, 예멘은 자체적으로 경작한다. 커피를 멀리 떨어진 국가까지 대량 운송하는 과정에서 커피의 씨앗만 있어도 효능을 볼 수 있고, 오히려 향미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 커피가 확산 되면서 이 시기쯤에 비로소 커피 로스팅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초기의 로스팅 도구들은 화덕이나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생두의 색이 변하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볶는 방식이었다. 

 

오스만제국으로 전해진 뒤로는 터키인이 먹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터키시 커피' 음용법이 뿌리를 깊게 내린다. 이스탄불에서 9개월 동안 체류한 프랑스의 장 드 테베노는 커피콩을 볶은 뒤 빻아 체즈베라는 도구에 끓여 마시는 과정을 여행기에 자세하게 적었다. 

 

커피를 마시는 목적도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차이가 있다. 무슬림들은 신의 음료로 여기며 밤새 코란을 외우기 위해 찾았던 반면 기독교인들은 커피를 병을 고치는 건강식품으로 여겨 자주 마시면서 카페인에 빠져들었다. 

 

오스트리아 빈 사람들은 터키식으로 커피를 끓이되 이를 여과장치로 거르고 우유와 꿀을 넣어 부드럽게 즐겼다. 비엔나 커피는 마부들이 흔들리는 마차에서도 커피를 흘리지 않도록 생크림을 얹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는 '마부의 커피'라는 뜻의 '아인슈패너 커피'라고 한다.

 

1711년 프랑스에서는 주전자에 천주머니를 달아놓고 원두가루를 그 안에 채운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이후 커피의 향미에 본격적으로 집중하면서 다양한 추출법이 등장한다. 커피의 향미를 복돋우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로스팅 기법이다. 

 

우려내기가 보편화한 뒤 이를 키워드로 추출에 삼출과 압력을 동원하려는 아이디어가 싹트게 되고, 훗날 에스프레소 머신의 등장을 불러온다. 

 

그러나 삼출식 달임법이 지닌 잡막과 쓴맛이 주는 부담감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는 20세기에 와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삼출과 여과를 통합한 드립법으로 커피 추출법의 새 지평을 열었다. 종일 필터를 사용하는 동시에 커피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고 양철 드리퍼를 통과시킴으로써 위장에 부담이 되는 지방산과 잡맛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루이지 베제라가 커피를 빨리 추출하기 위해 증기압을 이용하도록 만든 머신이 등장했다. 당시에 일일이 힘을 들이지 않고 작동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붐을 이뤘늗네, 밀라노 장인들은 커피 추출 머신의 기능을 개선해갔다. 

 

루이지 베제라의 아이디어를 통해 사이펀이 개발되었고, 레나토 비알레티가 가정에서도 에스프레소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모카포트를 발명했다. 1938년 아킬레 가치아가 레버에 피스톤을 연결함으로써 물의 끓는점이 오르는 것을 해결하는 동시에 9기압을 가함으로써 크레마를 형성하게 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했다. 

 

'빠르다'를 의미하는 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베제라가 먼저 썼지만, 크레마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탈리아 정통 에스프레소 머신의 정체성을 구축한 이는 가치아였다. 

 

시대의 정신을 깨우다 

 

커피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밤새워 창작의 혼을 불태우게 한 음료였다. 카페인은 작가의 지성적 각성뿐 아니라 불합리에 맞서는 시대정신도 일깨웠다. 프랑스 혁명, 보스턴 차 사건 등 중요한 오브제로 한몫했다. 

 

수피교도인 잘랄 앗 딘 알루미가 '입술 없는 꽃' 이라는 시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문학의 소재로 삼았다. "깨어나라, 아침이므로 / 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다 / 팔을 벌리라 / 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 '아침의 포도주'는 커피를 상징한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로 '카와'이며 카와는 포도주라는 의미인 동시에 커피를 뜻한다.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낸 요인의 하나로 커피를 종종 언급하는데, 커피를 즐겨 마신 인물의 파워보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계몽사상가들과 시민들의 교루와 공감대가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동력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는 계몽사상가들의 아지트였는데,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아르튀르 랭보 등이 단골이었으며 장 폴 마라를 비롯해 조르주 당통, 막시밀리앙 드로베스피에르 등 공화주의자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루소는 자서전 '고백록'에서 후견인이자 연인이던 프랑수아즈 루이즈드 바랑 부인과 아침 산책길에 우유를 탄 커피를 함께 마실 때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외 베토벤, 슈만, 바그너 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 등이 즐긴 커피 스토리 참고

 

미국 역사에서 커피 애호가로 처음 언급되는 인물은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45세에 펜실베이니아 주의회 의원이 된 그는 보스턴에 있던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정치 모임을 자주 열고 계몽사상과 자치 의식을 퍼뜨렸다.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소문난 커피 마니아였다. 하루에 3.8리터나 마셨다고 한다. 이 시기에 미국의 건국의 음료로 커피 산업이 육성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