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커피세계사 1장 - 탄베 유키히로

John Han 2022. 3. 14. 23:19

커피가 음용되기 시작한 확실한 시대는 15세기경. 차와 카카오에 비하면 매우 짧은 역사다.

그러나 실은 커피가 차와 카카오보다도 훨씬 오래 전에 인류와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 최초의 만남은 언제였을까?

 

1장 커피 이전 역사

 

'염소치기 칼디'와 '쉐이크 오말'

 

커피와 인간의 만남에 관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1) '염소치기 칼디' 발견설

 

'칼디'라는 이름의 염소치기 소년이 키우던 염소를 산으로 데려갔을 때,

염소들이 지나치게 흥분한 모습에 신기한 나머지 가만히 지켜 보았다.

 

그랬더니 염소들이 풀섶에 열린 빨간 열매를 먹고 있었다. 소년도 따라서

먹어 보았더니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염소들과 함께 춤추며 놀았다는 이야기다.

 

2) '쉐이크 오말' 발견설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예멘의 모카라는 마을로 추방된 이슬람 수도자

쉐이크 오말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중을 헤맬 때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를 발견했고 이를 먹었더니 피로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열매를 작은 새가 안내해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 열매로 만든

수프로 모카 마을을 역병으로부터 구해 죄를 용서받았다는 등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중에는 이들을 사실처럼 소개하는 책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발견설을 최초로 소개한 17세기 중반 문헌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 문헌은 '설화와 민간전례'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 그렇다면 진짜 이야기는 어떨까? 

 

커피나무 루트

 

커피나무는 언제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 직접적 증거가 되는 커피나무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 그러나 근종의 꼭두서니와 식물의 꽃가루 화석은 

몇 개 발견되었다. 

 

커피나무의 기원은 중신대(약 2300만년 전 ~ 53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약 1440만년 전 카메룬 부근(중앙아프리카)에서 근종 식물과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원시적인 커피나무 동종(커피나무속)이 생겨나 아프리카 대륙 일대 열대림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아프리카 대륙 중부에서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에티오피아부터 탄자니아로

이어지는 대지구대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부터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다양하게 

분기되었다.

 

빙하기에 많은 종이 절멸했지만, 현재는 아프리카 대륙에 43종, 마다가스카르 섬에 68종,

오세아니아에 14종 등 도합 125종의 커피나무 야생종이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125종 중 커피로 이용되는 것은 세 종류, 아라비카종, 로부스타종, 리베리카종으로 

구성된 '커피 3원종'이다. 여기서 인류가 가장 처음 이용한 것은 아라비카종이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녹병이라는 병해가 세계적으로 만연하면서 내병 품종 탐색이 이어졌고,

이때 발견된 것이 리베리카종과 로부스타종이었다. 

 

아라비카종은 커피나무가 아프리카 각지에서 진화를 거친 후, 탄자니아 서부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유게니오이디스종 이라는 커피나무에 로부스타종 화분이 수분되어 생겨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커피와의 최초 만남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커피 발견설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던 커피를 발견했다'라는 

이야기였지만, 진짜 '최초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커피나무는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가까이에 있었던 식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커피나무가 자생하는 중앙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 서남부에서는 거대한 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발달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차와 카카오의 경우 해당 지역 문명이 발달했고, 문헌과 유적을

통해 이용 기록이 다수 보존됐다. 그 덕에 오래된 역사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커피는 '금단의 과일'?

 

커피나무속 식물은 종자인 커피콩 이외 부분에도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 커피가 자생하는 지역에서는

원숭이, 새, 사향고양이 등 많은 동물들이 열매를 먹고 산다. 우리 조상 역시 태어날 때부터 친숙했던 

커피 열매를 먹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간혹 커피가 인류 진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과장된 주장이 있지만, 역으로 인류의 조상이 커피의 진화에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은 농후 하다. 열매를 먹은 작은 동물들이 유목을 타고 강이나 바다를 건너 다른

땅에 이동하는 사이 그들의 배설물에 의해 커피나무가 퍼져나갔을 것이며, 인간들 역시 이러한 '운반책'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속에 남겨진 커피

 

커피로 이용되는 아라비카종이 에티오피아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재배 작물은 세계로 널리 전파돼 커다란 영향을 준 '확산형'과 한정된 지역에 머물렀던 '국소형'으로 구분 된다.

 

전자의 대표로 수수, 조, 피 등이 있고, 후자로는 에티오피아 고지대에 재배되는 곡물인 테프와 엔세테를 들 수 있다.

테프, 엔세테는 현지에서는 주식이 되는 중요 작물이지만, 고도 2,000미터 열대 고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했다.

 

아라비카종도 이들처럼 고도 1,000~2,000미터 열대 고지대에 적응한 식물이다. 따라서 인간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에티오피아 산속에 남겨진 채 현지 사람들만이 아는 존재가 되어갔다.

 

에티오피아의 독자적인 커피문화

 

'민족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는 80개 넘는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오래 전부터

원시적인 생활을 해온 소수민족이 현재까지 공존하는 이 나라에는 다종다양한 문화와 풍습이 혼재되어

있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풍습 속에 오늘날 우리의 음용법과는 크게 다른 커피 이용법이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용법 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도 있다.

 

커피 세레머니

 

에티오피아의 독자적 음용법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커피 세레머니'일 것이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

손님을 맞을 때 행하는 의식이다.

 

방에는 꽃과 풀을 깔아 향이 피어나게 하고, 화로에 걸친 철냄비 위에서 생두를 살살 저어주며 강배전한다.

막 볶은 콩을 손님에게 건네 그 향을 즐기게 한 후, 나무주걱과 사발로 콩을 잘게 부순 다음 제베나 라고 불리는

포트로 끓여 컵에 담아 대접한다. 팝콘 등을 간식으로 하여 담소를 나누며, 통상 세 번 배전을 할 때까지

도합 세 잔을 마시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이 커피 세레머니 의식은 출처가 확실하지 않다. 에티오피아에서 대중적으로 음용이 확산 된 것은

1930년대로, 일본에 커피가 보급된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 커피 세레머니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들어서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20세기에 생겨난 전통일 가능성이 있다.

 

인류 최초의 '에너지 볼'

 

미국, 유럽의 커피책에는 5000년 이상 전부터,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인이 전쟁에 나설 때 커피를 휴대하여 

먹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커피와 버터를 섞어 반죽한 것으로, 카페인에 의한 흥분과 버터의 높은 

칼로리로 인해 병사들이 전투에서 활약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커피는 에너지 드링크가 아닌 '에너지 볼'이었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서남부 국경 부근에서

살아가는 오로모인의 일부 마을에 현재까지 '부나 카라'라는 이름으로 이 풍습이 남아 있다. 

 

그 존재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18세기 탐험가 제임스 브루스였다. 그의 수기에 따르면 매우 오래된 부족인

오로모인은 16-17세기경 시다모족을 비롯해 여러 부족을 침공한 이후 에티오피아 각지로 퍼져나가,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부족이 되었는데, '오로모의 에너지 볼'은 독자적 커피 이용법이다. 

 

하지만 정말로 처음 커피를 이용한 것이 오로모족이었는지, '에너지 볼'을 먹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오로모족은 정복한 다른 부족의 풍습을 흡수해 자신들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작

에너지 볼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오로모족에 흡수된 다른 부족이었을지 모른다.

 

생활의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커피 세레머니'와 '에너지 볼'이 커피 이용의 기원으로서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에티오피아의 

주류 부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나 아라비카의 식물학적 분포를 보면, 처음 커피와 만났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서남부 소수부족이라고 추정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에티오피아 서남부는 많은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부족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커피를 여러 형태로 이용하는 부족이 많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의미하는 말은

중심부의 경우 아라비아어에서 온 '분(분사 혹은 보노)'이다.

 

반면 서남부에서는 '카리' '티고' '기아' 등 부족별로 다양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고유어라고 불리는

것으로, 실은 그 다양성이 커피 이용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서 발견되는 고유어의 다양성은 각 부족이 다른 부족에게 배운 적 없는 독자적 커피를

사용했다는 것, 즉 그들의 선조야말로 '커피를 처음 이용한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된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서는 커피를 부르는 용어 말고도 그 이용법이 매우 다양하다. 잎과 콩을 음료로 하는 방법 외에

약으로 사용하거나 신선한 열매를 야채처럼 그대로 먹기도 한다. 또 말린 과육을 버터로 볶아먹기도 하며, 새로운 

곳으로 이주할 때 사람들의 몸에 커피를 문질러 몸을 정화하는 의식에도 이용한다. 

 

또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에서 커피를 입에 머금고 사방의 벽에 뿜어 뱉어내거나 청혼을 할 때 남성이 여성의 부모에게 

보내는 선물로 쓰이는 등 인생의 여러 통과의례 때 중요한 품목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단순한 식용을 넘어 독특한 사용법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커피의 특별한 '힘'을 알았다는 반증이기도 핟.

카페인이 지닌 각성과 피로경감 작용을 '힘'으로 여기며 의례에 사용해온 것일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