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PLE FIT 36

July 16, 쉬기봐 (쉬지 말고 기도해봐)

오늘부터, 다시, 기도 시편 16편 "하나님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피난처입니다. 폭우 가운데 피할 장소와 처마를 찾아 헤매듯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땅에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피하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생명의 근본이라 하셨으니 그곳으로 발걸음 하게 하옵소서 4절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또한 악을 따라 가는 발걸음이 되지 않..

June 26, 쉬기봐 (쉬지 말고 기도해봐)

기도하지 않는 상태는 늘 기독교적인 진실성을 잃은 모습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지 않는 지도자는 자신도 그 효능을 믿지 않는 상품을 파는 셈이다.' 뜨끔하는 말. 누군가에게 기도를 가르치기보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삶을 보내기로 결심..! 시편 26편으로 기도 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의 뜻과 양심이 온전한 시간들이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저의 동기는 늘 하나님을 향해 있었는지 점검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저의 말, 행동 하나하나 다 살펴 보십니다. 이것이 어떨 땐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 든든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언행의 보증인이 되시니 힘이 됩니다 없는 말들 상황들 만들어서 상처주는 사람들 단체들 참 많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막 나가는 행태들이 자주 보입니다 어..

June 24, 쉬기봐 (쉬지 말고 기도해봐)

시편 24편 말씀으로 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운동해야 몸도 개선 되고 조금씩 근육이 형성되듯 기도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매일 기도 운동 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기도 했던 내용들을 다시 시편 말씀을 보면서 기록합니다.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이 기록들을 보며 정상적인 자세(form)를 잡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하나님!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크라이플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공동체, 함께 사는 것, 함께 통용하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이 큽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마음이라면 '땅'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투기나 재산을 위하는 것보다 함께 타운을 이뤄 살면 어떨까 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 누울 곳이 없어..

June 22, 쉬기봐 (쉬지 말고 기도해봐)

시편 22편 시편 22편 말씀으로 기도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공유한 기도 제목을 보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후 다시 말씀을 읽으며 기도한 내용들을 리마인드 해서 기록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와 크라이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모든 동기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한 마음과 사명과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교회, 이 땅에서 마지막까지 최후의 주자로 전력질주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신음 소리도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 이전과 달리 허락하신 자녀를 통해 더 세밀하게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해도 울고, 낑낑거리고, 아픈 소리를 내도 부모는 귀 기울이고 보고 생각하고 얼러 만져주..

기도, 이렇게 합시다!

필자의 학창시절 섬기던 모교회는 '선교' '청년'이란 키워드로 활발했던 교회다. 6.25세대가 피난 시절 세운 교회로 전통적인 교회 모습이었지만 위의 두 키워드가 특징이란건 대단한 기적이다. 사실 저 두 키워드가 드러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도'다 따라서 '선교' '청년' 그리고 '기도'로 활발했던 공동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선교 기획, 준비, 활동 그리고 부산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매주 집회와 문화사역을 감당하고 남포동의 중심지에서 한 달에 한 번 기도회와 문화 활동을 감당하기까지 '기도'의 베이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참여는 깊지 않았으나 신학교 진학 후 간간히 고향에 방문할 때마다 함께 참석해서 열정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