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마가복음

December 26, 2021 말씀 스케치

John Han 2021. 12. 26. 01:43

1.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 갈망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적 충동과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인정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욕구에는, 건강과 장수, 음식, 수면,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내세의 삶, 자녀들의 행복,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대부분의 욕구들은 일반적으로 충족이 됩니다. 하지만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 ‘인정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사치를 부리는 것이 바로 그 욕구,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범죄자들이 범죄 활동을 하는 것도 이 욕망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미국 뉴욕에 경찰국장으로 지낸 사람에 말에 의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아가 과잉인 경우가 많아서 체포되고 나서 가장 먼저 요청하는 게 자신의 범죄행각이 대문짝만 하게 실린 신문을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사진이 유명한 운동선수나 배우, 연예인, 정치인들과 나란히 실린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만 있다면, 전기의자에 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미래 따위는 전혀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2. 한 사람의 욕구

 

본문에 등장 하는 ‘한 사람’도 그러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 17절에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사람(부자 청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계속해서 그 원하는 것 그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왔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선택할 때 그리고 지금 우리 교회에서 예배 하고 섬길 때 어떤 것을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선택할 때 우리의 점검 목록에 편의 시설이나 기타 등등의 다른 부수적인 것들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본질, 이 핵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하는 핵심,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생을 원했던 이 한 사람(부자 청년)이 문제의 핵심에 다가간 것은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 맞습니다. 이 한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간절함과 주저 없이 나오는 저돌성은 갖추고 있었지만, 이 행동 이면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부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주일 학교 출신에다가 매주 헌금은 물론이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땐 감사 헌금, 십일조 헌금, 제 많은 부로 교회도 짓고, 고3일 때는 주일도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고, 한 번도 나쁜 짓 하지도 않았고 나 깨끗합니다, 근데 예수님 이게 뭐가 부족해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께 원했던 답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예수님께 질문을 할 때 머릿속에 생각하던 답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이 청년을 본받아라, 이 같은 자가 없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자들 앞에서 인정 받고 칭찬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10장 20절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님께서 본문의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지금 이 장면이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얼마나 중요 하냐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이 사건을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3. 어린 아이들을 축복한 일, 에베소서의 선한 일과 본문의 선한 일의 차이

 

그런 본문을 다루기 전에 우리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앞 내용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헬라어로 파이디아’ 라고 합니다(갓난아기부터 십대 이전의 연령층에 속한 아이들을 가리킨다). 이때 당시 유대인들은 남자들이 가장 우선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전적으로 ‘종’의 신분이고, 어린 아이들은 눈에는 띄어도 소리를 내면 큰일 나는 그런 사회입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낼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라고 명령을 하시는데, 특히 아이들의 이런 자세가 하나님께 나아오는 데 필요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천국이 어린 아이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서 어린 아이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가복음 17절에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합니까? 질문하는데 마태복음은 ‘선한 일’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선한 일’은 구원을 받은 자로써, 그 감격에 힘입어 ‘선한 일을 행하다’라는 의미로 쓰여 졌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은 증거로써 ‘선한 일’이라는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여기서 ‘선한 일’은 부자 청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조건부로 선한 일이 구원을 위한 조건인 것처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원문을 보면 이 질문에 ‘must’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아주 강한 의미로 강제적인 의미로 ‘∼해야만 한다’라고 쓰입니다. 에베소서의 선한 일의 의미와 여기서 선한 일의 쓰인 의미가 다르다는 거죠. 이것을 유의해두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4. 두 가지 유형의 청년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세 가지 반응. (1) 떠난다 (2) 돌로 죽이려 한다 (3) 살려 달라고 한다.)

 

배 후 한 청년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 목사님,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제가 너무 많이 회개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사회생활에서는 그게 너무 어려우니까 잘 되지 않아요.” 말씀과 자신의 삶을 두고 몸부림하는 청년과 또 다른 한 청년이 와서, “목사님, 사회생활 해보셨어요? 해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해보면 쉽게 말 못할 거에요?” 반박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이 외에 여러 반응들이 있겠죠.

 

5. 부자 청년의 반응

 

부자 청년은 반응이 특이했습니다. 회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접 대든 것도 아니고 근심하며 떠나버렸습니다. 22절에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특이한 반응이다. 죄를 회개 하며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긴 슬픈데 다른 것 때문에 슬프다.)

 

 

6. 예수님의 지적 (무엇이 부자 청년을 근심하게 했나?)

 

사람은 (하나님과) 땅의 것을 관련지어서 생각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자기 공로로 하나님과의 관계나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헌금을 많이 함으로, 교회에 많은 일을 함으로..). 처음 복음이 들어 왔을 때, 신분이 해결됩니다. 양반과 하인의 신분 격차가 없어지고 평등해지는 것에 대중이 열광합니다. 어려운 경제가 부흥이 될 때 사람들은 교회에 몰려왔습니다. 그것이 전도할 때 수단 중 하나로 되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의 근본적인 자세와 태도를 지적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진정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고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청년 : “예수님, 제가 예배도 잘 하고 헌금도 잘 내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어긴 것 하나 없이 깨끗한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저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세요, 빨리 사람들에게 저를 알려주세요,”

 

   대단한 자부심으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태도에,

 

   예수님께서는 “그래? 청년아, 그럼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줘.” 

 

 자신은 계명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당당한 태도에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 20:3) “너가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데 첫 번째 계명은 왜 빼먹냐!” “이것도 하나님의 계명이니 지켜라”라고 받아 쳤습니다. 이 돈은 청년 자신에게 성취와 자기 노력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었습니다(요즘 한국에서도 20, 30대 부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7. 예수님 지적의 핵심

 

모든 소유를 팔라는 것 자체가 핵심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과 가족들의 필요를 돌볼 책임(의무)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소유하고 있거나 바라는 것들이 무엇이든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9.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브라함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삭을 얻었을 때, 가장 사랑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 마음이 어땠을지 결이를 생각해보니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가지고 있는 ‘이삭’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원하시는 것은) ‘파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11.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해 강조

 

부자 청년이 슬픔 모습으로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0:23, 25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놀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24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12. 유대인의 전반적인 생각

 

이 반응은 제자들이 믿음이 없었다기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 선에 대한 상급,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의 표시로 여겼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삶이 유대인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겐 재물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복의 증거인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에 재물이 불리하다는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 해서 부자는 전부 천국에 가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다면, 그것이 장점처럼 보여도 그 장점이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13. 본문의 핵심

 

매우 놀라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예수님은 가장 핵심적인 말을 합니다.

 

27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했는데,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했던 부자 청년이 떠나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게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1) 진실로.. (내가 진짜로 진심으로 말하는데)

   (2)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잘 들어 다시 한 번 내가 말하는데)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중세 로마 카톨릭 전성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황이 금화가 가득한 궤짝을 가리키면서 수도승인 베르나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노라 는 말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 같구려”

 

은과 금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 했더니 은, 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사람은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14.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할 반응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일까.. 

 

첫 번째,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깨닫는 반응.

 

베드로는 “예수님께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9장 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가복음 10장 30절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물질적인 복도 말씀하시는 건지에 대해서는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영적인 복, 천국에서의 상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지금은 소유한 것이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영원한 집 저 천국을 바라볼 때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중요 할지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우선순위를 분별하는 반응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은혜를 갈망하는 반응.

 

예수님께서 사람이 아니라 땅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는 내 소유가 아니라, 언제 변질 될지 모르는 내 인격이 아니라 선한 일들이 아니라 창조주 이시고 영원히 불변하지 않는 오직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반대되는 가치관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고 희망이기 때문에 은혜를 갈망하는 반응이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