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묵상

August 15, 2021 말씀 스케치

John Han 2021. 8. 13. 18:48

구조 

 

고향에서 배척(6:1-6)

12제자의 파송(6:7-13)

세례 요한의 죽음(6:14-29)

제자들의 보고(6:30-31)

 

낯설음에 익숙해야 한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환호, 인기 등 많은 무리들이 가는 곳곳마다 있음을 확인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마가복음을 살펴보면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게 사실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부정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는 곳에는 '복'이 있다. 이 '복'에 대해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복은 '구원'의 복이다. '죽음'과 같은 아무런 희망, 밝음 등 꿈 꿀 수 없었던 인생이 복음으로 생명을 얻어 꿈틀거린다는 것은 굉장한 복이다.

 

그러나 이번 본문에서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오셔서 자기 백성에게 거부당하신다. 이러한 모습을 본 당시 제자들, 1차 독자들, 우리들은 적잖히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좋은 결과만 봐았고 그래서 당연히 예수님을 받아들일거란 생각을 했는데 '거절'이라니..

 

이것이 현실이란 것을 일깨워준다! 대중의 환호, 인기 등이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배척, 거절, 거부 등 이러한 모습이 익숙해져야 할 부분이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지금껏 대중화 된 교회, 대중화 된 크리스천 문화, 마인드 소위 말하는 크리스텐덤 안에서 살아 왔다. 그러나 흐름이 바뀌었다.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변함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교회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갈지 깊은 고민과 대안 그리고 실행이 필요하다. 

 

다시, '영적 가족'에 대해..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장 수용적일 것이라 예상할 만한 사람들이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로 드러난다. 대선의 계절이 되면 후보들은 자신들의 고향에 내려간다. 왜냐면 그곳에 가장 많은 지지자가 있기 때문이다. 각 지방에서 학업, 취업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수도권 혹은 외국에 살다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고향을 찾는다. 왜냐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편안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어릴적부터 예수님을 봐온 사람들이고 한 공동체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예수가 아니냐?' 하고 경멸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옛날부터 봐왔던 예수인데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는 것이다. 이 말은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나?' 라고 말한 어투와 유사하다.

 

이런 반응에 예수님은 진짜 가족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앞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가족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렸는데, 이곳에서도 다시금 '영적 가족'은 누구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구원'은 하나님께만..

 

그리고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믿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처럼 믿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믿는 경우가 있다. 

 

말씀을 통해 더더욱 일깨워준다. 믿음은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점을. 

 

그리고 누가 '집 안'에 있는 사람인지 '집 밖'에 있는 사람인지 예측할 수 없다. 즉, 누가 복음을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의 성향은 ~하기 때문에 말 안 하는게 좋겠다' '저 사람이 설마..' 등의 이유로 복음을 말할 자와 하지 않을 자를 정하는 것은 오류다. 

 

전하는 것은 누구나에게 전해야 한다. 단지, 받아들이는 자가 더 깊게 알고 싶어 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자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의문'을 가졌지만, 이번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의문'을 가지신다. 

 

고향에서 불신으로 인해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을 하찮게 여겨선 안 된다. 예수님은 '겨자씨'와 같은 크기의 믿음이라 할지라도 '이 산을 저산'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믿음은 결코 그 자체로 작지 않다. 철저하게 자신(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죄를 해결할 수 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요소들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믿음(지식+신뢰)이 없었던 그곳에서 예수님은 권능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치유 사역을 하셨다. 비록 기간이 짧았으나, 예수님을 받아들인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환경에서든 전진한다.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없는 곳이든, 공개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든, 적대적인 분위기가 많은 곳이든 간에 상관 없이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 

 

상황만 바라본다면 일어나는 일들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요동케 하시지 하나님 나라가 흔들리진 않는다. 이것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리스도인은 계속 예수님을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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