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먹방, 먹스타그램, 현대판 오병이어(?) - 7번째 손님, 돈쭐 내는 세상,
단순히 먹는게 아닌 자아실현의 욕구가 된 '식사'
세 번째 배 여행
사도들이 전도 사역이 끝난 후 예수님께 와서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사도'라는 말은 '마가복음'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다. 예수님과 동일하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끝내고 왔을 때 '사도'란 표현이 쓰인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님을 쫓아가는 삶'이 있을 때 적용되지 않을까? 또한, 예수님은 수고한 사도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말씀 하셨다. '한적한' 곳은 '광야'이다. 예수님도 그러셨듯, 제자에게도 사역 후 '쉼'을 주기 위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음식을 섭취할 시간도 없었다. 이 상황은 자연스레 '오병이어 사건'과 연결된다.
34절 "목자 없는 양같음" - 불쌍히 여기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이동하시는데, 무리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한 후 따라간다. 상상해보면, 이 무리들은 배를 타고 쫓았다기 보다 육지에서 뛰면서 따라갔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배를 타고 이동할 수도 없는 형편의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2절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무리 중에도 치유 받고자 하는 아픈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로 형성되어 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어려운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예수님은 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결여 되었다면 심각하게 고미해봐야 한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종종 목자에 비유 된다. 민수기 27장 17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세울 것을 권한다(왕상 22:1, 대하 18:16). 목자가 없으면 백성은 흩어져 들짐승에게 먹혀버리기 때문이다(겔 34:5).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 없는 양 같다'는 언급은 이스라엘의 현재 지도자들에 대한 고발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양 떼를 보살피기 보다는 방치하고 착취하고 있었다. 이 거짓 목자에 대한 고발은 구약에서 흔하게 나오는 내용이다(사 56:11, 렘 10:21; 겔 34:2-6; 슥 10:2-3; 11:7).
참 목자의 돌봄의 표현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두 가지 방법으로 표현한다. 먼저 '가르침'이다. 가르침의 내용은 분명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먼저 하나님 말씀으로 먹이셨다. 왜냐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마 4:4, 눅 4:4).
두 번째로 '먹이심'이다. 종말에 나타날 메시아의 이미지는 참 목자로서 먹이시고, 고치시는 모습이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23-24)."
거짓 목자로 고통 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르침 후에 떡으로도 백성을 먹이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반문한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표현은 '우리가 사서 먹어야 한다는 말씀 아니지요?' '예수님 진심 아니시죠?'란 의미다. 당시 200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년치 월급이었다. 이 무리를 먹이기 위해 오늘날 화폐의 단위로 몇 천만원이 필요했다.
이 반응에 예수님은 가서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라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요한복음 6장 8-9절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오병이어 기적'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은 '물고기'란 단어를 한글로만 보면 어떤 종류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는 헬라어로 '익투스'란 단어를 쓴다. 이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인데, 익투스는 상품성이 좋은 것, 시장에 잘 팔리는 것, 살이 두툼하게 올라와 있는 먹기 좋은 물고기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익투스 단어가 아닌 '옵사리온'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 물고기는 시장에 팔기에 애매한 상품이다. 찢겨지고, 작아서 팔 수가 없는 상태의 물고기다. 그래서 어부들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린 후 '익투스'는 골라내고 '옵사리온'은 해변가에 버려둔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옵사리온'을 주워서 절인 후 빵에 싸서 먹었다.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는 바로 그런 음식이다.
예수님은 이 빵과 물고기로 사람들을 먹이셨다.
옵사리온 같은 인생이라도 '하나님이 쓰시겠다' 하면 기적은 일어난다
예수님은 인간의 경제학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값어치를 생각나게 하신다. '참 목자'는 배불리 먹이지 못하더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방법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옵사리온' 같은 사람, '옵사리온' 같은 섬김일지라도 기뻐 하신다. 가만히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서 '옵사리온' 같은 사람들, 병들고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물론 교회는 어떤 특정 계층만으로 한정 지을 수 없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예수님을 쫓았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 아이가 가져온 빵과 물고기는 '옵사리온' 같은 섬김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사용하셨기 때문에 '익투스'의 가치가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 예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기적에 대해 낱낱히 이야기 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돌보시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돌보시는 열심을 한 번도 거두시지 않으셨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는 '참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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