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기도하며 내다본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저 믿음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날까지 제자도에서 날로 더 성숙해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사람의 전반적인 가치 구조와 우선순위, 마음과 사고가 모두 반영된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도록 기도했다.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지난 두 달 동안 시간을 들여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한 적이 있는가? OTT 플랫폼이나 기타 기분 전환에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서 지극히 선한 것에 헌신되어 있는가? 혼자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가? 이 부분에서 더 나아지려고 조치를 취한 게 있는가? 당신의 긍휼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더 깊어졌는가? 냉소적인 자세가 아닌 사람들을 섬기려는 구체적인 노력으로 나타났는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당신의 답은 선택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우리 앞에 끊임없이 닥쳐오는 선택과 관련하여 죄책감을 유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죄책감 자체는 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스트레스와 원망만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점점풍성해지고 우리의 삶이 늘지식과 도덕적 통찰로 빚어진다면, 위의 예들이야말로 우리가 원하게 될 선택이며, 또한 잘 선택하고 싶은 영역일 것이다. 이런 선택은 단지 율법에 기초해서는 내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마음에서만 비롯된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간 사용은 다르다.수면의 양, 휴식, 경험의 균형 등 각기 다르다. 바울의 기도는 이 미로를 꿰뚫고 나간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순례의 어느 단계에 와 있든 탁월함, 곧 '지극히 선한 것'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했다. 물론 지극히 선한 것을 추구하려면 은혜의 하나님께서 성경에 자신을 계시해 주신 그 기준을 늘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스로 측정할 일련의 자의적 척도를 내놓지 않는다. 신자들에게 까다로운 조항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 아버지께 이 신자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추구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바울은 결코 현상 유지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리스도꼐서 재림하실 때 완성에 이르도록 되어 있기에, 그 사실을 아는 바울은 지금부터 우리가 그쪽으로 매진하기를 원했다. 그는 결코 기도에 나태해질 수 없었다...
1)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삶을 정당화하는 구실은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는 근거는 기도할 마음이 내키는지의 여부인가? 아니라면 그분은 어떤 근거로 우리를 받아 주시는가? 그 사실은 우리가 기도에 부여하는 우선순위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2) 당신의 기도 중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위한 기도는 몇 퍼센트나 되는가? 당신의 기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왜 그런가, 혹은 왜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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