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의로 인도할 수 없다
바울은 믿음이 할례 뿐 아니라 율법보다도 더 우선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느낌, 자신감이라고 말하거나 터무니 없는 내용을 믿으려고 애쓰는 것을 믿음이라 말한다. 그러나 믿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구체적인 예로 봐야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예로 설명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과 할례가 아무런 관련이 없듯, 율법 또한 그렇다.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할례를 했듯, 율법 또한 의롭다 함을 받은 후 약 400년이 지난 후에야 주어졌다.
믿음은 율법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표준, 기준에 맞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믿음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사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행위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그 약속을 받았고, 우리도 아브라함이 받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바울이 말한 '율법에 속한 자들'은 유대 백성을 가리키는데, 유대 백성만이 상속자라면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가 받은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대인 역시 율법에 불순종하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진노'는 진리를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의미한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는 표현은 율법이 진노를 이루게 한다는 의미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들이 죄를 깨닫도록 돕고,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형벌을 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더 최악의 상황일 뿐이다. 왜냐면 사람은 고의든 아니든 간에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여만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결코 우리에게 의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믿음은 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열방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신뢰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뛰어 넘는 믿음이었다.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을 나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의존한다면 끝까지 보장된다. 왜냐면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신뢰한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창조주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분, 유지하시는 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바울은 늙은 나이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열방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이지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아브라함이 뛰어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두려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 하셨다. 아브라함은 혈통적으로 유대인만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조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의 모습은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역경 속에서도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모습은 이 땅의 모든 믿는 자들이 해야할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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