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
어느 집단에 속했는지와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은 롬 1:16부터 전개된 논증의 전환점을 알린다. 앞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과, 유대인 마저 이에 해당한다는 무거운 내용은 이제부터 전개될 희망의 복음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한다. 또한 롬 1:16-17에서 바울이 짧게 언급했듯,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사람은 절대 죄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한다.
'의'라는 용어는 보통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공평함, 공정함을 가리켰는데 본문에서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처벌을 면제받는 길이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사회적 집단을 구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믿는 자'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 필요성을 못 느끼는 자들은 선물을 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 할지라도 받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직 받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선물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24절)' 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선물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세례 받은 자라거나, 집안 대대로 믿음의 가문이라거나 기타 어떤 것이든 주장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고 의로운 자라 선언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존재로 회복되었다.
일깨워주는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공의를 만족시켜줬고 화해함으로 사랑을 일깨워줬다.
어떤 노동자가 일하던 중 안전에 대해 미흡했던 작업 환경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회사가 그 노동자의 부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회사는 즉시 충분한 돈을 보상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속죄한 것이라 여기고 더 이상 이 남자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남자가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생략되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로 평생 살아야 하기에 그 회사에 대해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채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돈으로 갚았다 할지 모르나 진정 화해하지 못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글에서 인간의 죄가 하나님께 해를 입혔다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가 그분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 죄에 대해 형벌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죄의 형벌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향해 비난하지 않으시도록 충분한 댓가를 치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희생'으로 보내셨기 때문에 이제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완전히 열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완전한 화해가 이뤄졌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손을 내미셨다.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유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랑할 여지가 없다.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받는다면 아무런 공로 없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어떠한 근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지, 위치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외에 다른 근거로 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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