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요한복음

September 19, 2021 말씀 스케치

John Han 2021. 9. 18. 03:26

 

요한복음 17:20-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교회; 하나 됨'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말씀 전체의 흐름을 고민하면서 '건축'의 개념으로 뭔가 '짓는다'는 행위로 생각해 보았다. 1) 왜 이 땅에 '교회'가 지어져야(세워져야) 하는가? 2) '누가' (공간에) 올 것을 기대하며 '설계' 하는가? 3) 건축 과정의 '변수'는 무엇인가? 4) '완성된 집(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기서 '교회가 지어져야 하는가?'라는건 1차적인 '건물'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존재로서 '우리' 그 자체다. 그렇다면 '교회'로서 우리는 이땅에서 어떠한 존재로 지음 받야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 명 한 명의 '교회'가 모여진 '공동체'에 누가 올 것은 기대하며 '설계' 하느냐 라는 질문은 '전도'의 측면을 고려해서 질문한 것이다. 어떤 공간이든 아무런 목적 없이 지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와서 '소비 하겠다'라는 기대감과 계획성을 가지고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설계'라는 것은 어떤 통로를 통해서 오든 간에 '누군가'가 '공동체'라는 공간을 통해서 느꼈으면 하는 바람,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져야 한다.

 

그러한 맥락을 가지고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함께 고민해보자. 

 


본문은 열두 제자와 그들의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 내용이다. 예수님의 중보기도 중 핵심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 돼야 할 이유와 중요성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려는 데 있다.

 

안타깝지만 현재 '교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물론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일도 많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 했을 때 받는 비난은 어마어마하다.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우리는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가? '양적 성장'만을 위해 경쟁하듯이 운영하는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과 닮은 모습은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가치관 자체가 '무한 경쟁' 이요 '약육강식'의 시대정신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대 가치관 앞에 지쳐 있고, 불안해 하는데 '교회' 모습 마저 그러하다면 더 큰 실망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어떠한 변화가 필요할까? 바로 오늘본문의 내용처럼 '하나 됨'이다. 본문은 하나 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절)'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이다.

 

 

자, 그렇다면 이 땅에 '교회'는 왜 필요할까? 나는 왜 '교회'가 되어야 할까? 

 

20절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생명을 가진 공동체, 살아있는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도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다른 무엇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따라서 가장 큰 목적으로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이 말씀을 통해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사람들로 구성되는지 알 수 있다. 먼저는 예수님이 말씀으로 제자들 가운데 오셨고, 제자들은 '말'을 통해 교회를 세울 것이다. 요한복음은 '말씀으로 오셨다'를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말로 시작했다(요 1:14).

 

말씀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거처, 즉 성전으로 삼으신 것이 요한복음의 메인 주제다. 그리고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또 다른 성도들이 생겨나서 그들이 주님의 거처가 되는 것이 바로 '교회'다. 

 

또한 선교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말씀'이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말씀'이다. 말씀이 살아 있지 않고서는 교회가 살아날 수 없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서 창조되며, 말씀을 드러내는 곳이다. 말씀이 말씀답게 선포되지 않으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수 없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교회'는 필요하고 세워져야 한다. 이 '말'은 바로 우리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아니고서는 '말씀'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말씀'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성전으로 삼으셨듯,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주님의 거처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여기'가 아니라 '여기 저기' 곳곳에 존재한다. '움직이는 교회'다. 그래서 '교회'의 말씀을 통해 또 다른 '교회'가 형성 되는 것이다. 

 

 

말씀이 말씀답게 선포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할까?

 

21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두 가지를 기도하신다. 첫째,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둘째,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사' 공동체 성도들이 하나가 되고 또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을 때에 '세상'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될 것이라 말한다. 제자들의 '말'을 통해서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서로 하나가 되고 또 예수님과 하나님과 하나가 된 교회 공동체를 보고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중요한 교회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교회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된 교회'가 선포한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무관심하거나, 다툼이 잦은 교회가 있다면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한지 잘 따져봐야 한다. 교회가 하나 되어 갈 때 말씀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 됨'을 위해 애쓰기보다 경쟁적으로 '하나'만 우뚝 솟아 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나 됨'이 가능할까?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11)'

 

요한복음 13-17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기 직전으로 마치 지휘관이 부대원들을 가장 위험한 작전에 투입시키기 직전에 최종 지시와 격려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 준다.  

 

13-17장에는 '세상(cosmos)'이라는 말이 40회 이상 나온다. 세상 선교는 곧 예수님이 보여주실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영광'은 하나님의 가장 하나님다우심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때가 언제일까? 바로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이 드러날 때다.

 

참 목자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끝까지' 사랑함으로 본질적인 사랑을 드러내셨다.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삼위 하나님처럼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을 향한 그분의 사랑의 뜻이 우리를 통해 실현될 때, 다틈과 미움으로 분열된 세상과 구별 된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이 가장 하나님다워지실 것이다.

 

 

제대로 된 교회가 세워졌을 때

 

23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성도 간의 연합, 하나님과 연합 된 공동체는 어떠한 결과가 드러날까?

 

예수님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하나 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교회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되면 자신들도 그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시기, 질투, 경쟁, 전쟁으로 세월을 허비하던 세상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선교적 교회인가? 선교만 많이 하면 선교적 교회인가? 비지니스를 창출해서 어떠한 자립 구조를 이루면 선교적 교회인가? 

 

아니다. 말씀으로 주님의 처소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품고 있는 공동체가 선교적 교회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공동체,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된 공동체, 생명의 능력으로 죽음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동체.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사랑하려고 애쓰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누려야 한다. 정작 구제하는 교회가 되려다가 정작 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다가 선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들의 사랑을 받아 누릴 때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 세상을 섬기는 교회 선교적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