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요한삼서

요한삼서 1장 9-15절

John Han 2021. 9. 27. 21:54

진리로 사는 사람

 

두 사람 (1) 악을 행하는 자

사람에 따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반면에 잊고 싶은 경우도 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먼저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는 같은 공동체 소속은 아니었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사이처럼 보인다. 디오드레베의 특별한 설명 없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제우스에 의해 양육된 자'인데 비유대인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저자의 권위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내쫓기까지 한다. 본문에서 언급 된 '편지(9절;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도록 격려하는 편지 내용일텐데, 분명 요한은 가오이가 속한 교회에 써서 보냈지만 디오드레베는 거부 했다. 또한 디오드레베는 악한 말로 비방했으며,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았다.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요한은 만약 방문하게 된다면 디오드레베의 행위를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요한의 말은 오늘날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주의 경보를 울린다. 리더십, 직분은 어떤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겸손과 책임이 따르다. 성경적인 리더십은 섬기기 위해 낮아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직분자든 아니든 교회 안에서 자신의 욕심에 따라 죄를 부추긴다면 반드시 제지해야 한다. 또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의 행위를 보며 우리는 믿음의 동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칭찬과 인정이 없다 해도, 내가 중심이 아니라해도 동일하게 기쁨으로 섬길 것인가?

 

 

두 사람 (2) 선을 행하는 자

선, 악은 도덕적 관점으로 옳고 그른 행동이 아니라 진리와 거짓의 문제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악을 행하는 자를 본받지 말고 선을 행하는 자를 본 받으라 권면한다. 여기서 악한 것과 선한 것은 도덕적인 차원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다. 앞의 말씀의 내용에서부터 봤을 때, 영적인 문제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디오드레베가 순회 전도자들을 맞이 하지 않은 행위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불순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선과 악의 행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11절). 이 때문에 디오드레베의 행위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부분이 아니다. 이 내용은 가이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무언인지 보여준다. 요한은 하나님께 관계 되는 삶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관계되지 않는 길로 갈 것인가 말하며, 디오드레베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요한은 하나님께 관계 된 길로 가고 있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언급한다.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이곳 외에 등장하는 곳은 없다. 요한은 12절에서 여러 증인들을 말하면서 데메드리오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 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추론할 수 있다. 데메드리오는 요한삼서를 가지고 가이오에게 갈 사람이며, 순회 전도자이며, 가이오와 마찬가지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특히 요한을 포함한 공동체가 보증하는 확실하게 믿을만한 사람이다(12c절). 

 

요한은 가이오가 가야할 길이 외롭지 않은 길이라 격려한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잘못된 권위를 휘두르는 디오드레베 혹은 그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위축 될 수 있다. 그러나 악의 편에 서지 않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 된 길을 가는 자들도 분명히 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모방하여 행동하기도 한다. 누구에게 '영양'을 공급 받는가에 따라 영향력의 모습이 달라진다. 우리는 선과 악 중 무엇에 더 많은 노출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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