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그리스도인의 일상 이야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들 이유가 생겼다

John Han 2021. 8. 13. 10:11

8월 12일(목) 날씨 흐린 것 같으면서 후덥지근 하고 더우나 에어컨 공간에 있어서 잘 못 느낌

 

John은 밤새 뒤척이다 뜬 눈으로 새벽에 울리는 알람 소리를 맞이 했다. 일어날까 다시 잘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지만 그런 망설임은 사치란 생각을 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전에는 부지런히 씻고 준비해서 집을 나섰지만, 어느덧 양치질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채 나가는 것이 당연해졌다. 

 

서울 강서구에서 인천 청라까지 지역명만 봐서는 꽤 먼 거리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새벽 5시 30분 시간 대에는 불과 '17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John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입어 오전 6시까지 약속된 장소에 가서 정해진 분량까지 읽은 책 내용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면 곧장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이제는 꽤 익숙하게 네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도착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빵과 커피'를 파는 가게다. John은 아침 일찍부터 '빵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던걸까? 그곳 가게 주인 Jay는 먼저 도착하여 John을 반갑게 맞이한다. John은 늘 그랬다는 듯, 앞치마를 두른 뒤 Jay가 말하는대로 배합에 맞춰 물과 이스트를 섞기 시작한다. 매우 긴장한 모습으로. 

 

통밀가루를 퍼는 소리, 반죽기가 돌아가는 소리, 설거지 하는 소리 등 빵이 만들어지기 위한 모든 소리들이 마무리 되면 Jay는 John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다음 스케쥴을 위해 이동한다. John은 대략 1시간 30분 동안 가게를 지켜야 하는데, 혹 손님들이 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내내 시뮬레이션을 그려 본다. 

 

그때 마침 문을 여는 소리!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께서 들어오셨다. John은 평소 때보다 더 긴장했다. 왜냐면 한 번도 맞이해본적 없는 연령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John은 '할아버지, 할머니' 연령대 분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친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란 또래들을 많이 부러워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할머니는 가게 안으로 들어와 커피 주문이 가능한지 물어 보셨다. John은 2주 전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아메리카노 만들기를 배워서 연습해왔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란 대답을 해버렸다. 나중에서야 '네, 가능합니다' 대신 '네,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한 자신이 창피했지만, 당시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정해진 분량대로 원두를 갈아서 템퍼로 수평을 맞춘 후 샷을 내리며 일회용 컵에 얼음과 물을 담는다. 그리고 추출된 샷을 부어 뚜껑과 홀더를 씌운 뒤 할머니께 드렸다. John은 처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으로 미소와 함께 건내드렸는데,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커피를 받은 후 마시기 전에 물었다. '달달한가?'

 

John은 당황했지만 곧 평정심을 찾은 뒤, 시럽을 넣어드리겠다며 다시 커피를 가져갔다. 시럽 통에서 두 번 정도 넣은 후 건내드렸다. 할머니는 한 번 마셔보더니 이건 아니지 라는 표정으로 '더!' 주문하였다. John은 몇 번을 더 넣어야 할까 망설이며 Jay에게 배운 매뉴얼에는 없었던터라 고민이 되었지만, 3번을 더 커피에 넣은 후 할머니께 다시 드렸다. 

 

시럽 펌프질 5번이 들어간 커피를 마신 후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난 달달한게 최고야!'라며 동전 잔돈은 쿨하게 받지 않으시고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John은 동일한 만족의 표정과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John은 20대 초반 시절, 그의 기타 스승으로부터 '커피는 에스프레소 한 잔 털어 넣은 후, 아메리카노를 음미하는거야'라는 장난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석 달을 그렇게 스타벅스에서 주문하며 구석에서 쓰디 쓴 잔들을 비워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이후 자랑과 허세로 덧칠한 커피 문화를 즐기며 '커피는 이래야 해' '원두는 이런거야' '어디 커피가 새롭더라고' '뉴욕의 커피는 말이지..' 뱉었던 수많은 세월들을 기억하며 피식 웃었으리라.

 

그 후에도 할머니는 종종 와서 시럽 5번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들고 가셨다. John은 무의식 속에 생각했던 것 같다. '피곤해도 내가 일어나야 할 이유가 생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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